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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GER KING의 탄생

최초의 버거킹은 1953년 7월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탄생했습니다. 설립자는 케이스 J. 크래머와 그의 아내의 삼촌인 매튜 번즈였습니다. 매튜 번즈는 작은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을 갖고 있었으며 당시에 맥도날드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것에 고무되어 사업을 확대할 계획으로 케이스 J. 크래머에게 동업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1952년 맥도날드를 방문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를 찾은 두사람은 그곳에서 조지 그리드라는 발명가로 부터 "인스타-브로일러(Insta-Broiler)"의 사용권을 취득하였습니다. 인스타-브로일러는 한꺼번에 12장씩, 시간당 400개의 햄버거 패티를 구울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두사람은 빠른 서비스를 가능케 해주는 이 기계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가게의 이름을 "인스타-버거킹"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들의 가게는 곧 외식 프렌차이즈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던 제임스 맥라모어와 데이비드 애드거턴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스타-버거킹은 지역별로 프렌차이즈 사업권을 팔아 가맹점들이 자유롭게 매장을 늘리거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고 있었습니다. 제임스 맥라모어와 데이비드 애거스턴은 마이애미의 프렌차이즈 사업권을 따내고 1954년 12월 4일 인스타-버거킹 가맹점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장이 잦은 인스타-브로일러 대신 직화 방식을 사용해 패티의 육즙을 유지해주는 가스 그릴을 직접 제작해서 1954년 "인스타"를 제거한 "버거킹"이라는 상호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크래머와 매튜 번즈의 인스타-버거킹은 1959년 경영악화로 도산위기에 놓이자 제임스 맥라모어와 데이비드 애거스턴은 인스타-버거킹 전체를 인수하고 회사 전체의 상호도 인스타를 제거한 "버거킹"으로 바꾸었습니다.이때 제임스 맥라이언은 33세, 애드거턴은 32세 였습니다.

 

 

 

BURGER KING의 발전

 

제임스 맥라이언과 데이비드 애거스턴 두사람은 사업초기 신속하게 매장을 늘리기 위해 지역 단위로 사업권을 판매해 지역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매장을 개설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 이는 본사가 직접 부동산을 사들여 점주에게 장기 임대하는 직영점 방식을 고수하던 맥도날드와는 차별화되는 전략이었습니다. 이로인해 버거킹은 빠르게 매장 수를 늘려 나갈 수 있었으며 1959년 사업권 인수 당시 40여 개에 불과했던 체인점은 8년만에 274개로 확대 되었습니다. 버거킹 역사상 가장 큰 도약의 전환점은 다른 라이벌 레스토랑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패티가 1/4파운드(110g)에 달하는 커다란 햄버거를 출시한 것이었습니다. 햄버거의 이름도 "엄청 큰 것" 을 뜻하는 "와퍼(Whopper)"라고 이름 지었으며, 일반적인 햄버거가 15~18센트 였던 것과 달리 와퍼는 37센트에 판매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비싸지만 푸짐한 버거에 기꺼이 돈을 지불 하였습니다. 와퍼가 대성공을 거두자 버거킹은 1958년부터 "와퍼의 집 (Home Of The Whopper)"을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59년 인스타-버거킹을 인수 후 본격적인 버거킹 프렌차이즈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1963년에는 푸에르토리코에 최초의 해외 지점을 개설하였습니다. 이는 맥도날드보다 4년 앞선 것이었습니다. 1967년까지 274개의 매장을 확보했고 직원수는 8,000여명에 달하였습니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두 창업자 맥라모어와 애거스턴은 1967년 버거킹을 대형 제과회사 필스버리(Pilsbury)에 1,800만 달러에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버거킹은 지역 사업자들과의 느슨한 관계를 재정비하여 일사분란한 체제를 갖추었으며 1979년부터는 영업시간을 앞당겨 아침 메뉴를 판매하는 등 적극적인 쇄신 노력으로 1979년 버거킹은 15%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80년대들어 패스트푸드는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버거킹의 매출은 감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BURGER KING의 현재 근황

80년대 들어 패스트푸드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매출 감수를 겪던 버거킹은 모기업 필스버리의 재정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영국 기업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이 적대적 M&A를 시도하여 결국 버거킹의 모기업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랜 경영권 혼란의 시작이었습니다. 1990년대에도 맥도날드, 웬디스 등 라이벌 업체와의 경쟁은 날로 심화되고 있었으며, 그동안 저임금 노동인력을 활용해 왔던 버거킹은 미성년 노동인력에 대한 정부의 압력으로 인력부족에 시달리기도 하며 경쟁업체에 밀려 정체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1997년 버거킹 모회사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은 주류회사 기네스와 합병하면서 디아지오(Diageo)로 재탄생 되었으며, 이어 2002년 투자회사 TPG캐피털에 매각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부진이 계속되어 2010년경에는 부채가 7억 달러 이상에 달했습니다. 결국 2010년 브라질의 사모펀드 3G캐피털에 다시 매각 되었습니다.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였지만 맥도날드에 밀려 만년2위로 불리던 버거킹은 2위 자리마저도 웬디스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이에 버거킹은 신메뉴 출시와 2013년에는 커피 메뉴를 확충하는 등 재기에 힘을 쏟고 있으며, 최근에는 메뉴를 단순화하여 해외에서 프렌차이징하기 쉽게 만드는 한편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홍보 캠페인과 할인 이벤트 등으로 수익 증대를 꾀한 끝에 매출이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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