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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E의 의미
NIKE의 창업자 빌 바우어만과 필 나이트는 미국 오리건 대학의 육상팀 감독과 소속팀 선수로 인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필 나이트는 중거리 육상선수로 활약했으며,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필 나이트는 석사 논문에서 일본의 합리적인 가격대의 운동화가 당시 독일제 일색이었던 미국 운동화 산업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 하였습니다. 학위 취득 후 일본으로 건너 가 오니츠카 타이거사의 운동화에 대한 미국내 독점 판매권을 획득하여 돌아 왔습니다. 필 나이트는 오니츠카 타이거사의 샘플 신발을 새로운 육상 신발에 관심이 많았던 빌 바우어만에게 보냈고, 샘플을 받아 본 바우어만은 나이트에게 동업을 제안합니다. 그리하여 두사람은 1964년 미국 오리건 주에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하게 됩니다. 처음에 두사람은 오니츠카 타이거사에 신발 200켤레를 주문하여 차 트렁크에 싣고 육상 트랙을 찾아 돌아다니며 선수들에게 직접 판매하였습니다. 회사는 설립 첫해에 약 8천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계속 판매가 호전되자 필 나이트의 대학원 동기이자 육상 선수 출신 제프 존슨을 영입하였습니다. 그는 블루 리본 스포츠의 마케팅 및 회사 제품 라인을 정리하여 회사의 초기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블르 리본 스포츠는 1966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첫번째 매장을 열고 직영 판매를 시작합니다. 이듬해에는 웰즐리에 두 번째 매장을 열고, 이후 블루 리본 스포츠는 미국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0년 빌 바우어만은 새로운 고무 스파이크(운동화 밑창)을 개발하여 1972년 "코르테즈"라는 첫 자체 운동화를 출시하였습니다. 블루 리본 스포츠가 독자적인 제품들을 생산하면서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관계는 악화 되었으며, 결국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종료되었습니다. 1971년 독자적인 브랜드 "나이키"를 만들고 로고 디자인을 고민하던 필 나이트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캐롤린 데이비스에게 디자인을 맡겼습니다. 캐롤린은 몇 가지 디자인을 만들어 제안했고 그중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로고를 최종 선택합니다. 이 로고 디자인이 나이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스우시(Swoosh. 휙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렇게 NIKE는 탄생하게 됩니다.
NIKE 의 심기일전
코르테즈 개발 이후 빌 바우어만은 자사의 제품을 육상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후원하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스티브 오벳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며, 1983년 여자 마라톤에 출전한 조안 베노이트 사무엘슨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세계 신기록을 수립 하였습니다. 1979년에는 NASA 직원 이던 프랭크 루디와 함께 에어 쿠셔닝 기술을 적용한 "테일 윈드"를 출시하였습니다. 1970년대 미국에 조깅 열풍이 불면서 운동화를 전면에 내세운 나이키는 미국 스포츠 용품을 대표하는 선두 주자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미국에 에어로빅 열풍이 불었을 때 이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가 에어로빅 슈즈를 출시 한 리복(Reebok)에게 선두 자리를 넘겨 주고 말았습니다. 이에 나이키는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1984년 NBA의 시카고 불스팀 소속이었던 신예 선수 마이클 조던과 농구화 및 의류에 대한 후원 계약을 체결합니다. 1985년 마이클 조던을 위해 에어 조던 원 (Air Jordan 1)을 개발했는데 조던의 화려한 플레이에 판매율은 급격하게 성장합니다. 1988년 "JUST DO IT (일단 해봐)"광고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이 캠페인의 감성적인 접근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나이키가 운동화는 물론 스포츠 의류사업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매김하는데 큰 공헌을 합니다. 1990년대 중반 부터 나이키는 뛰어난 운동 선수나 팀과 후원 계약을 활발히 진행합니다. 1996년 타이거 우즈와 연간 5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스포츠 후원 마케팅에 많은 공을 들여 업계 선두 자리의 지위를 유지해 나갑니다. 2006년에는 나이키를 단순한 신발 제조 업체에서 디지털 스포츠 업체로 변화시킨 "나이키 플러스"를 출시 하였습니다. 애플과 협업하여 운동화에 센서를 부착하여 아이팟이나 아이폰에 연동해서 사용자의 운동 거리, 시간, 칼로리 소모량 등을 확인 할 수 있도록 개발 하였습니다. 이렇게 정체 되지 않고 꾸준히 스포츠 후원 마케팅과 첨단 기술의 접목을 통한 기술 개발은 NIKE가 오랜 기간 스포츠 업계의 선두 주자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는 원동력입니다.
에어 쿠셔닝 기술
NIKE를 대표하는 기술 개발 사례로는 에어 쿠셔닝 기술 (Air Cushioning Technology)과 나이키 플러스 (NIKE+)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에어 쿠셔닝 기술은 NASA 직원이었던 프랭크 루디의 아이디어에서 비롯 되었는데요, 외부 압력에도 원상태롤 돌아가는 압축공기의 성질을 이용해 1979년 처음 고안 되었습니다. 이 기술을 활용해 나이키는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 자연스럽게 원상태로 돌아가는 운동화 밑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을 적용해 마라톤 운동화로 "테일윈드"를 출시하였습니다. 테일윈드에는 또다른 기술인 와플솔 기술도 적용되어 두가지 기술이 접목된 최초의 마라톤화입니다. 1982년에는 에어 쿠셔닝 기술이 접목 된 최초의 농구화 에어 포스 원(Air Force 1)을 출시하였으며, 이후 다양한 운동 상황에 맞춰 이 기술이 적용된 운동화를 출시해 오고 있습니다. 2006년에 출시 된 나이키 플러스는 애플의 디지털 센서와 나이키의 제품을 결합한 상품으로, 사용자의 운동 행위를 측정하고 측정한 데이터를 다른 이들과 공유 할 수 있도록 개발 되었습니다. 나이키 플러스 농구화, 나이키 플러스 트레이닝화가 출시 되었고 최근에는 나이키 퓨얼 및 나이키 플러스 퓨얼 밴드도 출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