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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stle의 공로
네슬레는 스위스의 식료품 브랜드로 약사이자 브랜드 설립자였던 앙리 네슬레(Henri Nestle)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앙리 네슬레의 본명은 하인리히 네슬레로, 1814년 아버지 요한 네슬레와 어머니 안나 에흐먼 사이에서 14남매 중 11번째로 태어 났습니다. 1836년 20살이 된 하인리히 네슬레는 J.J. 스타인 약사 밑에서 4년간의 견습과정을 거쳐 정식 약사가 되었고, 1843년 스위스의 작은 마을 브베(Vevey)로 이주해 약국을 열었습니다. 당시 브베 지역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지역에 적응하기 위해 하인리히 네슬레는 본인의 프랑스식 이름인 '앙리 네슬레' 로 개명하였습니다. 이후 앙리 네슬레는 약국에서 직접 제조한 겨자, 식초, 리큐르, 미네랄 워터, 인조비료, 강장제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 하였습니다. 1867년 앙리 네슬레는 '페린락테 앙리 네슬레'를 설립하였고 곡식가루, 설탕, 우유 등을 혼합해 인공모유인 '페린락테'를 개발하여 시장에 출시 하였습니다. 이 당시 유럽에서는 영양결핍으로 10명 중 9명의 신생아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페린란테는 젖이 돌지않는 산모들에게 제공 되어 신생아의 영양결핍을 막았고, 풍부한 영양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휴대하기 용이하다는 장점때문에 일반 부모들도 널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류에 대한 지대한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장 가능성을 확인 한 네슬레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로 수출하기 시작 해 1872년까지 미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호주 등 17개국에 수출 하였습니다. 이때 앙리 네슬레는 자신의 성인 '네슬레'가 '네스트(Nest, 새의 둥지)'와 발음이 비슷해 모성애와 어머니의 온화함을 연상시진다고 생각해 이를 기업 이름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네슬레'브랜드의 시작입니다.
Nestle의 성장
1871년부터 1873년까지 페린란테 앙리 네슬레의 매출은 두배로 뛰었으며 매일 1천여 개에서 2천여 개의 제품이 판매 되었습니다. 1875년 61살이 된 앙리 네슬레는 더 이상 자신이 회사의 확장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사업에 안목이 있던 브베의 정치인인 '줄스 몬느레트(Jules Monnerat)' 에게 1백만 프랑에 페린란테 앙리 네슬레를 매각 하였습니다. 1875년 줄스 몬느레트는 페리란테 앙리 네슬레의 이름을 네슬레 컴퍼니(Nestlee Company)로 변경 한 후 주식시장에 상장 하였습니다. 1905년 경쟁사 였던 애글로 스위스 연유 회사와 합병하여 '네슬레&앵글로 스위스 컨덴스드 밀크 컴퍼니'를 설립 했습니다. 1917년 경에는 전 세계에 40개의 공장을 가동하였으며, 1921년 총 80개의 공장과 12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 부족한 우유를 대체할 연유와 분유의 소비 증가로 네슬레는 크게 성장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 종료 후 다시 우유의 생산, 공급이 원활해지자 연유와 분유의 소비가 크게 줄어 네슬레는 창립 후 첫 경영의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1992년 회사는 스위스 금융전문가인 루이스 대플스를 회장으로 영입합니다. 루이스 대플스는 전세계에 과도하게 분포 된 공장들을 처분하고, 조직을 간소화 시키는 등 구조조정을 거쳐 부채를 줄여 나갔습니다. 1920년대 후반 초콜릿 생산라인을 확장하고 마일로(Milo), 엘리든(Eledon), 맥아유, 유아용 파우더 버터밀크 등의 제품을 출시하엿습니다. 이때부터 초콜릿은 인공모유 다음으로 네슬레의 중요한 생산품이 되었습니다. 1938년 회사는 '네스카페(NESCAFE)'를 출시하였습니다. 비우유 제품으로 처음으로 출시한 제품입니다. 2차 세계대전은 네스카페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41년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네스카페는 미군들의 필수 음료가 되어 점차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네스카페의 인기로 네슬레의 매출은 전쟁 전후 2배이상 성장 하였습니다. 1947년부터 1973년까지 네슬레는 사업부문의 다각화를 위해 여러 관련 회사들을 인수하면서 회사를 성장 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오일 쇼크로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원재료 가격도 폭등하여 네슬레의 재정은 위험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응책으로 회사는 미국의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의 지분 일부를 사들이고 1977년에는 의약 제조업체인 미국의 알콘을 인수한 후 회사 이름을 "네슬레 그룹(Nestle S.A)'으로 변경 하였습니다. 2005년 스위스의 노바티스 사가 보유했던 영유아식 브랜드 '거버'를 인수했으며 치료용 특수영양식품인 "노바티스 메디컬 뉴트리션'을 인수하여 네슬레는 헬스케어 영양식품 부문에서 세계에서 두번재로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네슬레는 세계 197여 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약 34만며의 직원과 80여개국 500여 개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 하고 있습니다.
인공 모유 개발
1867년 앙리 네슬레가 개발한 페린락테는 불어로 '가루 우유(Milky Flour)'라는 의미로 신생아들을 위한 인공모유를 말합니다. 페린락테는 1867년 캔에 밀봉된 형태로 시장에 출시되었으며 액상 제품들에 비해 유통기한이 길었고, 우유및 물과 혼합 할 수 있었습니다. 1800년대 이전까지 유럽에서는 산모의 모유가 나오지 않는 경우 차선책으로 유모(Wet Nurse)를 고용하거나 가정에서 동물의 젖에 꿀을 첨가해 먹였다고 합니다. 이때 영양 결핍, 부패한 우유 섭취 등으로 신생아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빈번 하였고, 신생아들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당시 화학자들은 모유가 신생아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전제로 소, 양, 염소 등 동물의 젖을 이용해 모유와 비슷한 식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앙리 네슬레도 우유, 곡물가루, 설탕 및 비타민 등을 조합해 보았고, 그 결과 최초의 인공모유 파우더인 '페린락테' 개발에 성공 하였습니다. (최초의 액상 인공모유는 프랑스의 화학자인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1861년 개발). 1800년대 중반 고무 젖꼭지(1845년 개발)와 유리 젖병(1851년 개발)등의 개발과 함께 인공모유는 유럽 및 미국 등에 널리 퍼졌고, 페린락테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870년까지 페린락테는 이집트, 러시아,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세계시장으로 수출 되었으며, 이후 페린락테에 사용되었던 밀크 파우더는 네슬레의 밀크 초콜릿 등에도 활용 되었습니다. 네슬레는 이 페린락테를 기반으로 이유식, 유제품, 초콜릿 및 제과제품, 아이스크림, 커피, 가공식품, 냉동 식품, 양념 및 소스, 동물 사료, 다이어트 제품, 미네랄 워터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 해 1만여 개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습니다.